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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보고서

[정책 연구과제] 조선후기 수원 양반 가문의 세거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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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연구기획팀|조회수 : 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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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 수원학연구센터
연구책임 최성환 연구위원
보고서 번호 SRI-기획-2017-05
과제구분 기획
발행일 2017-12-31

조선후기 수원 양반 가문의 세거 양상

 

수원학연구센터 최성환 연구위원

 

 전근대 시기 수원 지역의 주요 가문에 대한 연구는 단편적인 조사와 언급에 따라 진행되어, 수원학의 전제인 수원 지역수원 사람들을 종합한 연구 성과는 아직 없다. 이는 아직 지역사 연구 여건이 마련되지 상황과 축적된 기초 자료 자료의 부족 등으로 인해 당시 수원부에 세거하였던 가문들을 엮어 연구를 진행하기에는 벅찼기 때문이다.

 전근대 시기 중 정조~고종대는 수원의 기본 골자가 갖추어져 가는 시기로, 특히 정조대 이래 수원의 변화상은 수원이라는 지역이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하면서 지금의 수원과 연결되어 가는지를 가늠해 갈 수 있는 시기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역사는 근현대 산업화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지역 기반은 파괴되고 가문들은 뿔뿔이 흩어진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현장 조사 위주의 수원 세거 가문 연구는 전근대 수원 지역을 주도한 주요 가문들의 전체상을 그려내는 데에 근본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전근대 수원 전역을 대상으로 한 문헌 조사를 통하여 수원 세거 주요 가문들의 현황을 일별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수원에 세거하였던 사람들에 대한 인적정보는 호적 자료, 족보, 연대기 문헌 사료, 무과 방목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이들 자료 중에서 특히 정조~고종대에 수원부를 세거지로 하여 소과 및 문무과에 응시한 사람들을 선별 한 후, 기존에 진행되었던 조사 결과와 족보 및 연대기 문헌 사료를 종합하여 심층 조사를 하였다.

 전근대 시대에 수원 유수부의 읍치(邑治), 곧 수원 화성의 성곽 내 지역은 수원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전근대 시대에 읍치 공간은 해당 지역을 움직이는 유력 가문의 세거지가 아니었다. 이는 전근대 조선이 집권적 봉건체제로 형성되었고, 봉건 지배층의 구성원인 양반 사대부들이 읍치 밖의 농업 지대를 다양한 형태의 농장(農庄)으로 구축하고 그 생산물을 왕경과 연계하여 유통시키면서 출사(出仕) 준비와 출사 이후 생활의 바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는 수조권에 기반한 과전체제가 붕괴하고 소유권에 근거한 농장 조성과 종법(宗法) 질서가 구축되는 16~17세기 무렵에 전국적으로 뚜렷해진 현상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하여, 수원의 외촌 지역 가운데에서 농업에 적합하면서 한양을 중심으로 한 유통권과 연계될 수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양반 사대부 가문의 주요 세거지가 16~17세기까지는 일단 형성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선대의 분묘를 누대 수원에 조성하면서 수원을 세거지로 하여 과거에 등제 되었던 이들을 수원의 세거(世居) 가문으로 파악하였다.

 그런데 수원은 전근대 조선에서 여타 지방 도시들에 비하여 주요 가문들의 이입이 많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정조의 화성 신도시 건설로 인한 것이었다. 정조의 수원 육성책은 단지 수원의 도시적 발전 뿐 아니라 읍치의 주민 구성까지 별경(別京)에 걸맞는 위상으로 향상시키려는 구상 하에 진행된 사업이었다.1) 이를 위하여 정조는 수원 화성 읍치에 수원의 외촌은 물론이고 한양과 경기충청, 그리고 멀리는 전라경상도 세거 양반 가문까지 이주하여 축실(築室)을 유도하는 적극적 유인책을 시행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정조대 후반 수원에는 많은 수의 양반 사대부 가문이 이주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이들을 수원의 이주(移住) 가문으로 파악하였다.

 수원에 세거하던 가문들은 대대로 수원에 선영을 조성하였고, 수원을 근거지로 하여 과거에 응시하였으며, 그 후손들의 대다수도 수원에 세거하는 경우이다. 이들은 대체로 수원의 외촌 지역에 세거하면서 생활 기반인 전장을 운영하고, 출사할 때에는 한양의 경제(京第)에서 생활하였다.

 반면 수원으로 이주한 가문들은 타 지역을 근거지로 생활하다가, 당대에 수원을 세거지로 하여 과거에 응시한 가문들이 많다. 이주 가문들의 선조는 주로 한성[]을 기반으로 세거하며 과거에 응시하다 수원으로 이주해온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주 가문의 선영의 위치는 경기도 일대에 걸쳐 있었으며 대체로 수원의 외촌을 포함하여 그 인근 지역인 용인, 진위, 안산 일대에 자리 잡고 있었다.

 , 이들 가문의 수원 이주는 급작스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정조의 화성 별경조성 정책과 더불어 실시된 수원부내(府內) 유생의 응제시(應製試)에 참여하기 위해 수원에 이주한 경우와 수원 인근 지역에 분묘를 조성하고 수원 출신 과거 합격자 가문들과 혼인 관계를 통해 수원으로 이주해온 경우로 나눠 볼 수 있다.

 이주 가문의 후손들이 다시 본래의 세거지인 한성, 경기, 충청도 일대로 돌아간 경우도 있으나, 정조의 서거 이후 수원의 위상이 점차 하락하던 후대에도 수원의 외촌에 정착하며 세거하는 사례도 상당수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수원 화성 읍치 및 외촌에 세거하였던 수원 사람들은 전근대 시기 수원을 이끌던 주요 인물들이며, 현재까지도 이들의 후손 중 일부는 수원, 화성 일대에 동족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기도 하다.

 이 연구를 통해서 정조 시기부터 고종대까지 근대 시기로 넘어가기 이전의 수원 지역을 주도한 유력한 문무반 가문의 주요 계파와 그 인적 구성 및 세거 공간을 살펴, 수원 신읍치 건설과 함께한 수원의 위상과 수원 사람들의 세거 및 이주 양상을 다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본 연구에서는 수원 지역 주요 양반 가문의 세거 양상만 조감하였을 뿐, 그 구성원들이 지역 사회 혹은 중앙의 인사들과 어떠한 교유 양상을 보였고, 그들의 주요 행적이 어떠하였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살펴보지 못하였다. 특히, 이들이 한말~근대 전환 시기에 수원 지역에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도 밝히지 못하였다. 이는 애당초 전근대 시기 수원 지역 주요 가문을 추출해 보는 것을 목표로 했던 본 연구의 한계이다. 향후의 연구에서 더욱 심도 깊은 연구가 진행되기를 바랄 뿐이다.

 

1) 최성환, 정조의 수원 화성 건설과 양경(兩京) 구상왕이 만든 세계의 신도시들」, 수원시정연구원,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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