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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사] 왜 지방분권개헌이 시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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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연구기획팀|조회수 : 5,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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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방분권개헌이 시급한가?

 

수원시정연구원 원장 이재은

 

1. 지방자치의 발자취: 중앙집권적 분산체제

 

   2018년은 한국에서 지방의회가 복원된 지 27년, 단체장 직선이 복원된 지 23년째이다. 사람으로 치면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자기책임을 지는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했을 기간인데,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성년이 된 자식을 품안에 끼고 있으려는 편집증적 부모처럼 강고한 중앙집권체제가 지방정부에게 자율성과 책임성을 부여하지 않고 통제와 간섭으로 옭죄고 있다. 한국의 중앙-지방정부의 관계(inter-governmental relation)는 대등한 수평적 협력관계가 아니라 수직적 지배-종속관계로 설정되어 있다. 그동안 지방정부의 사무·사업이나 세출·세입규모는 양적으로 엄청나게 커졌는데, 왜 아직도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통제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가? 정부 간 관계에 내재해 있는 다면적인 집권적 통제기제가 근본요인이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1949년 지방자치법 제정 이후 1952년 첫 선거가 실시된 이래 여러 시행착오과정과 제도개편을 거쳐 1960년 4.19혁명 이후 온전한 모습의 지방자치를 실현했다. 당시에는 자치단체가 특별시․도와 시․읍․면으로 구성되었고,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모두 주민이 직접 선출했다. 그런데 5.16군사정변으로 지방의회가 해산되고 단체장은 임명제로 전환하면서 1991년 지방의회가 복원될 때까지 풀뿌리민주주의는 30년간 긴 암흑기를 보냈다. 군사정부는 지방의회만 해산한 것이 아니라 기초단체를 시․읍․면에서 시․군으로 개편하며 지역공동체를 해체시켰다. 주민의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해야 하는 기초자치단체가 광역화되면서 행정구역은 너무 넓고, 생활밀착형 공공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기에는 주민들에서 너무 먼 존재로 바뀌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시민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적 주민자치의 발전을 제약하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군사독재를 타파하고 민주화를 실현하였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결과 대통령직선제를 실현했고, 지방자치 실시를 지연시켜온 헌법 부칙조항 주1)도 삭제되었다. 대통령 직선제가 복원되었으나 노태우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지방자치의 복원은 지연되었다. 야당대표(김대중·김영삼)의 투쟁과 학계·시민사회의 강한 요구가 이어지면서 1991년 지방의회가 먼저 복원되고, 1995년에 단체장과 지방의원의 동시선거가 실시되며, 주민직선에 의한 지방자치가 온전하게 복원되었다.

 

주1) 유신헌법에서는 부칙에 통일 이후에 실시하는 것으로 미루었고, 제5공화국헌법에서는 부칙에 재정자립도를 고려하여 순차적으로 실시한다고 규정하며 지방자치의 부활을 회피하고 있었다.

 

   지방자치의 복원과정에서 대통령직선제에 급급했던 민주화세력도 지방자치에 관한 헌법조항을 충실하게 규정하지 못하고 예전의 조항을 답습하면서, 지방자치의 범주와 권한, 재원이 모두 중앙정부의 시혜(법령)에 의해 결정되도록 만들었다. 당시 중앙관료로 구성된 지방자치실시 기획단에서 마련된 지방자치제도는 자치단체에게 형식적인 행․재정 집행권만 부여하고, 실질적인 결정권은 중앙정부가 갖는 중앙집권구조를 온존시키는 것이었다. 즉 정부 간 관계가 사무․사업 등 주요 정책결정권은 중앙정부가 장악하고 집행권만 지방자치단체로 분산시키는 이른바 중앙집권적 분산체제 주2)로 제도화되었다. 특히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결정하는 핵심기제인 재원조달방안을 지방세와 같은 자주재원이 아니라 지방교부세와 지방양여금과 같은 이전재원으로 편제하였다. 이후 한국의 지방자치는 자율-참여-책임이 구현되지 못하는 중앙의존적인 모습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2) 주민의 생활에 직결된 공공서비스의 공급과 비용부담(조세)에 관한 의사결정과정에서 중앙정부가 주로 결정권을 가지면 集權(centralization), 지방정부가 자주적 결정권을 가지면 分權, 공공서비스의 집행과정에서 중앙정부가 직접 집행하는 비중이 높으면 集中(concentration), 지방정부가 집행하는 비중이 높으면 分散이라고 개념을 정의해서 구분한다. 李載殷,「韓國の政府間財政關係の歷史的 特質」, 日本地方財政學會 國際シンポジウム, 1997.

 

2. 왜 지방분권체제를 말하는가?

 

   세계경제가 유례없는 호황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고, 한국경제도 수출호조로 성장률이 회복되고 있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기간산업의 구조조정 실패, 저출산 고령사회의 심화, 양극화 심화와 가계부채의 누적, 신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수출시장의 위협 가중, 제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의 격화, 정경유착의 부패 만연과 사회갈등구조 심화 등 위기요인이 켜켜이 쌓여있다.

 

   자본주의경제는 시장경쟁을 바탕으로 하지만 시장 그 자체가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시장실패론)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한데, 정부도 선거에서 득표를 우선하는 정치인들의 행태와 보신주의에 빠지기 쉬운 관료주의로 인해 정부도 실패(정부실패론)하기 쉽다. 탄핵국면을 거치며 한국의 사회경제적 위기는 시장과 정부 모두 그 윤리적 기초가 붕괴하면서 초래된 복합위기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현재의 위기는 발전단계의 전환과정에서 초래되는 전환기적 위기이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수단 변화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구조적 위기이다. 즉 정치‧경제‧사회시스템의 전면적 개편을 요구하는 위기이다. 국가운영의 기본 틀인 헌법 개정을 공론화하는 이유이다.

 

   그러면 체제개혁의 방향은 무엇일까? 지금의 정치지형 속에서 체제개혁이 가능하긴 할까? 체제개혁은 한국사회를 선진국형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선진국은 단지 국민소득수준이 3만달러를 넘어선다고 금방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경제주체(국민)의 의식과 행동이 합리적인 틀 속에서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자본주의시장경제는 자본이든 노동이든 공정한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윤리가 작동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특권세력이 존재해선 안 되며, 모든 국민이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누려야 한다. 사회는 갈등구조를 민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협력적 공동체정신이 구현되어야 한다.

 

   한국사회의 총체적 체제 속에서 정치-경제-사회의 제도적 틀이나 그 속에서 드러나는 각 주체들의 행태는 아직도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용인했던 개발시대의 각종 천민자본주의적 잔재들로 가득하다. 온갖 불공정경쟁행위로 부를 축적하는 자본가들, 소수의 대기업노동자들의 권익보호에 함몰되어 있는 노동조합, 소아적 이기주의에 빠져 도덕적 타락도 은폐하며 유지되는 정치인·관료·보수언론·재벌 등 지배계층의 유착구조와 부패 등이 천민성의 잔재이다. 사회의 주류 지배계층들의 의식과 행태, 이들의 행태에 편승하는 대중들의 행태가 선진국 도약을 막고 있다.

 

   정치권의 논의를 보면 반복되는 부패의 근원을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구한다. 그래서 이를 분권체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틀린 논리는 아니지만 분권이 중앙정부 안에서 이원집정부제나 책임총리제로 바꾸는 것에 그친다면 정답은 아니다. 대통령의 권한을 국회와 나누면 정부의 실패를 막을 수 있을까. 단언코 아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근원은 개발독재시대에 구축된 강고한 중앙집권체제이고, 투표의 비례성을 무시하고 영호남 지역 세력의 나누먹기가 가능하도록 편제된 단순다수결 소선거구제이다. 그 이면에서 재벌지배체제의 온갖 불공정‧비효율‧부패가 만연하는 것이다. 집권성의 폐해를 온존시킨 채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시킨다고 체제의 효율성이 회복되지 않는다.

 

   우리는 중앙집권체제의 폐해를 수없이 경험하고 있다. 세월호의 비극만하더라도 만일 위기관리권한이 자치단체장(전남지사나 진도군수)에게 있었다면 그렇게 대형참사를 방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메르스 사태도 지방정부의 탄력적 대응이 최악의 상황을 막았다. 최근 각종 재난사고에서도 중앙정부는 탄력적 대응능력이 떨어지고 지방정부는 권한도 재원도 불충분하기 때문에 피해가 커지고 있다. 중앙과 지방이 적절하게 권한과 재원을 나누는 선진국형 지방분권체제 구축이 절실한 이유이다.

 

   선진국을 살펴보면 지방분권이 잘 되고 사회복지안전망이 잘 갖춰진 혼합경제체제를 구축한 나라들에서 국민들의 윤리의식이나 참여의식도 높고 혁신성‧안정성‧지속가능성도 높다. 이들 국가는 시장경제의 공정한 경쟁체제를 철저하게 확립하고, 필연적인 ‘시장의 실패’는 효율적 정부체제가 보완한다. 효율적 정부체제는 전국을 획일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강고한 중앙집권체제가 아니라 지역의 다양성과 혁신성이 발휘되도록 자율적인 권한과 충분한 재원이 보장되는 유연한 지방분권체제이다.

 

   1980년대 이후 선진국들에서 지방분권개혁이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다. 예컨대 중앙집권체제가 강했던 프랑스는 2002년 헌법을 개정하여 분권국가를 선언하고, 지방정부의 권한과 재원을 대폭 강화하고, 중앙정부 또는 상위 지방정부가  하위 지방정부에 간섭할 수 없도록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1995년 지방분권개혁을 시작해서 2000년도에 일괄이양법을 제정하여 기관위임사무를 폐지하고 사무권한을 대폭 지방으로 이양했고, 이어서 2007년도에는 국고보조금을 일부 폐지하고 그 재원을 비례적 지방소득세(세율 10%)로 이양하고, 지역 간 세수변동은 지방교부세를 통해 조정하는 이른바 3위1체 개혁을 실시하였고, 최근에는 국세인 소비세 세율을 인상하고 그 일부를 지방소비세 세율인상으로 이양하였다.

 

   이처럼 그동안 중앙집권체제로 발전해온 선진국들도 지방분권체제로 이행하는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금처럼 제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진행되는 시대에 경직적인 중앙집권체제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중앙정부는 유연한 플랫폼을 만들어주고 구체적인 정책결정과 집행은 지방정부에게 맡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지방정부를 중앙정부 지방출장소로 방치하고는 선진사회 도약도, 제4차 산업혁명도 무망한 꿈이다. 분권은 지방분권이 필수적이고, 그 핵심은 지방분권개헌이다. 한국에서 20여년의 짧은 지방자치 역사를 보더라도 민주적 거버넌스를 통한 행정혁신도 지방정부가 더 잘해왔고, 지방정부의 혁신사례를 중앙정부가 배우고 있다.

 

3. 지방분권개혁의 한계와 개헌의 시급성

 

   2000년부터 지역에서 지방분권운동이 시작되었다.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를 비롯한 유력 대선후보들과 지방분권개혁 협약도 맺었다. 노무현대통령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고 지방살리기 3대 특별법을 제정하며 지방분권개혁에 시동을 걸었고,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지방분권개혁을 추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이명박 박근혜정부에서 의무보육이나 기초연금과 같이 대통령 공약사항을 정책으로 채택하고 그 실행을 지방정부에 강제시키면서(의무강제) 필요한 재원을 일부만 보전하여 지방재정을 압박하거나, 지방재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감세정책을 일방적으로 실시하여 모든 지방정부를 재정긴장상태에 빠뜨리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자치단체가 주민의 삶에 직결된 시범적 복지제도를 도입하려 하면 오히려 이를 저지하였고, 수원시 주차장조례와 같이 미래를 위해 좋은 조례를 제정해도 상위법의 규정이 없다고 무산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중앙정부가 강력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배경에 우리 헌법의 부실한 지방자치조항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 헌법에는 지방자치 조항이 다음과 같이 단 2개 조항밖에 없다.

 

   제8장 지방자치
   제117조
   ①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
   ②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는 법률로 정한다.

 

   제118조
   ① 지방자치단체에 의회를 둔다.
   ② 지방의회의 조직·권한·의원선거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임방법 기타 지방자치단체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헌법에서 지방자치에 관한 가장 명확한 규정은 지방의회 의원 선출조항 뿐이다. 단체장은 주민이 직선하지 않아도 된다. 지방정부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이다. 권한은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라고 규정하여 매우 협소하고 추상적이다. 조례제정권을 허용했지만 ‘법령의 범위 안에서’라고 울타리를 쳐놓았다. 나머지는 모두 법률로 정하도록 했다. 즉 지방자치의 범주가 중앙정부의 시혜에 의해서 결정되도록 했다. 자치입법권·자치조직권·자치재정권이 모두 중앙정부의 법률로 규정하도록 되어 있다. 헌법조항의 부실한 규정을 근거로 중앙정부는 이제까지 국회의 통제를 받는 법률보다도 행정부의 자의적 통제가 가능한 시행령에서 구체적 내용을 정해왔다. 헌법에서 포괄적 위임금지의 원칙을 설정하고 있지만 지방자치법·지방재정법·지방교부세법 등 지방자치 관련법률을 보면 주요한 조항들이 모두 시행령으로 위임되어 있다.

 

   이처럼 법령에 의해 지방자치의 범주가 결정되다보니 중앙정부는 지방정부를 하급기관화하고, 지방정부의 자치조직권이나 자치재정권을 임의적으로 통제하여 지방정부의 손발을 묶어놓고 중앙정부만 쳐다보도록 만들어왔다. 게다가 자치사무는 총사무의 3할에 머물고 중앙정부의 국가사무를 위임사무형태로 지방에 강제하면서 2할에 불과한 지방세수입마저도 국가사무를 위한 재정지출에 동원하여 대부분의 지방정부를 재정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중앙정부가 전국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지역문제까지도 모두 관여하다보니 중앙정부는 기능이 과부하 되어 있어 중요한 국가적 과제마저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지경에 놓여있다. 또한 전국을 획일적으로 규제하다보니 지방정부는 자율성과 혁신역량을 상실하고 피동적 역할에 머물러 있다.

 

   그동안 다양한 지방분권개혁안이 제시되어도 중앙정부(국회와 행정부)는 입법을 거부하거나 지연시키며 개혁에 소극적이었다. 그럼에도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한 어느 야당의원은 지방분권개헌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를 향해 개별입법으로도 얼마든지 지방분권개혁을 할 수 있다는 부정적 발언을 일삼고 있다. 이는 이제까지 지방분권개혁이 왜 지지부진했는지에 대한 자기반성이 결여된 반응이다. 지방자치 복원이후 20여년의 중앙정부 행태를 고려할 때 국회나 중앙부처의 자발적 입법으로 지방분권개혁이 실시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제는 매우 부실한 헌법의 지방자치규정을 근본적으로 고쳐 획기적인 지방분권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헌법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을 명료하게 규정하고, 각각의 권한배분과 이에 걸 맞는 세원배분의 기본원칙을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권한배분은 유럽지방자치헌장에 명시된 보완성의 원리(principle of subsidiarity)를 반영하여 주민생활에 직결된 권한은 기초자치정부에 우선배분하고 기초자치정부가 처리할 수 없는 사무·사업을 순차적으로 광역자치정부와 중앙정부에 보완적으로 배분해야 한다. 또한 자주재정권의 확충을 위해 세원배분을 포함한 과세자주권을 명시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지역 간 재정력격차의 조정의무를 부여하고, 위임사무에 대한 비용부담책임도 명시해야 한다. 또한 촛불혁명을 초래했던 공권력의 남용이나 대의민주주의의 파행을 비롯해 지역에서의 관료 및 토호세력의 폐해를 국민들이 직접 시정할 수 있도록 직접민주주의의 중요기제를 강화해야 한다. 예컨대 국민발안제와 국민투표제‧국민소환제 등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골고루 도입해야 한다.

 

4. 지방분권개헌안의 핵심내용

 

   지방분권개헌을 요구하는 국민과 지역민의 결사체인 지방분권개헌국민회의는 그동안 학계와 지방정부 구성원 등 지역의 여러 주체들과 함께 지방분권개헌안에 대하여 수많은 토론을 거쳐 지방분권체제 구축에 필수적인 요소를 담은 개헌안을 준비해왔고, 이를 국회 개헌특위에 제안도 했다.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지방분권개헌안의 핵심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헌법 전문과 제1조 제3항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임을 명시한다.
   ② 기본권 조항에서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주민으로서의 자치권을 가진다고 선언한다.
   ③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개칭하고, 지방정부의 종류는 광역지방정부와 기초지방정부로 구분하고, 법률로써 광역은 시․도, 기초는 시․군․구로 규정한다.
   ④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지방정부 상호 간의 권한의 배분은 보충성의 원리에 기초하여 배분한다고 규정한다.
   ⑤ 입법권의 귀속과 법률의 종류에 관해서 국회는 중앙정부의 법률을 입법하고, 광역자치의회는 광역지방정부의 자치법률을 입법하고, 기초자치의회는 기초자치정부의 법률을 입법한다고 규정하고, 법률의 우선순위는 중앙정부의 법률, 광역지방정부의 자치법률, 기초정부의 자치법률 순이며, 헌법에 별도로 규정한 자치입법 사항에 대해서는 그 자치법률이 우선하는 것으로 한다.
   ⑥ 국회와 광역자치의회, 기초자치의회는 헌법에서 규정한 입법권을 행사한다.
   ⑦ 행정권한의 배분도 광역지방정부와 기초지방정부는 각각의 의회가 제정한 자치법률에 따른 고유사무와 법률로 위임된 위임사무를 집행하고, 법률로 위임된 사항에 대하여 규칙을 제정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⑧ 지방정부의 과세자주권과 자주재정권을 구체적으로 규정한다. 즉 국세와 지방세의 범주를 명확히 규정하고 주요 세원에 대한 공동세 내지 세원공유를 허용하고, 고유한 지방세로서의 재산세 등을 규정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방정부 상호 간의 위임사무에 대해서는 위임하는 정부가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지방정부 간의 재정격차를 시정하는 것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상호 간에 의무화하는 재정조정제도의 설치를 규정한다.
   ⑨ 지방의회와 지방정부 집행기관의 조직은 그 지방정부의 의회에서 제정하는 자치법률로 한다.
   ⑩ 국회를 상원(지역원)과 하원(민의원)으로 구성하고 상원은 지역을 대표하고, 하원은 국민을 대표하며, 지역대표는 편중되지 않도록 구성하고, 하원은 인구비례로 구성하도록 한다.
   ⑪ 직접민주주의제도의 확장을 위해 국민발안제, 국민투표제, 국민소환제 등을 도입한다.
   ⑫ 헌법 개정을 국민이 직접 제안할 수 있는 국민발안제를 도입하여 헌법개정의 유연성을 보장한다.
   ⑬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을 강화하기 위해 지방정부의 대표가 고루 참여하는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설치한다.

 

   이상에서 열거한 핵심내용은 중앙-지방정부의 관계를 지방분권체제로 전환하는데 필수적인 사항들이다. 특히 중앙정부도 모든 권한이 국회의 입법권에 의해서 결정되듯이 지방정부도 지방의회의 자치법률에 의해 결정되도록 보장하는 것이 선결요건이고, 권한배분과 재원배분에 있어 자율성을 확립해야 하고, 낙후지역 등 자치여건이 취약한 지역에 대한 자치권보장을 위해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수직적 수평적 재정조정책임을 의무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자치복지권·자치조직권·자치행정권·자치재정권 등 연방제국가에 준하는 자율성을 확립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세계화·저출산 고령화·저성장화·제4차 산업혁명 등 대내외 여건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면서 선진국형 사회경제구조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수평적 협력관계를 잘 구축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중앙집권체제를 허용하고 있는 헌법의 부실한 지방자치조항을 바꾸는 것이다. 지방분권개헌은 정파적 이해나 특정한 이념에 편향된 요구가 아니라 모든 지역이 고루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핵심기제이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역사적 전환점에서 개혁에 머뭇거리다 국가적 위기를 경험했다. 국가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분권개혁은 중앙정부 안에서의 권력구조 개편도 중요하지만 지방정부에게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정책경쟁이 가능하도록 자율성과 책임성을 부여하는 지방분권개혁이 더 긴요하다. 지방분권개헌은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절박한 시대적 과제이다. 

 

5. 마무리 글

 

   자본주의경제는 경제주체 간의 공정한 경쟁을 바탕으로 발전한다. 공정한 경쟁은 각 주체의 선택의 자유가 필수적이다. 지역경제도 마찬가지이다. 각 지역 주민과 지방정부에게 선택의 자유가 충분히 주어져야 지역 간 창의적 경쟁이 가능하고, 지역 간 창의적 경쟁은 지역의 혁신을 추동하여 국민경제 발전을 선도할 수 있다. 물론 시장경쟁에서 탈락한 경제주체를 사회안전망으로 보호하듯이, 지역 간 경쟁에서 뒤쳐진 지역도 최소한의 균질한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지역발전정책과 재정조정제도로 보호해야 한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5명의 유력 후보자들이 모두 지방분권과 직접민주주의 실현을 포함한 헌법개정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국민과 약속했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의 논의를 보면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정파적 이해득실이 우선하며 본질적인 개헌논의를 저해하고 있다. 지방분권개헌은 더욱 그러하다. 국회를 포함한 정치세력들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혁에 몰입하고 있다. 중앙집권체제 하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집권카르텔은 지방분권개헌에 소극적이고 심지어 방해하고 있다.

 

   지방정부와 지역주민에게 그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지방자치의 근간이며, 지역 간 창의적 혁신경쟁의 필수요소이다. 과부화된 중앙정부의 권한과 재정을 지방정부와 재배분하여, 중앙정부는 전국적 과제를 담당하고, 지방정부는 지역적 과제를 담당하는 지방분권국가를 실현해야 한다. 지방분권형 헌법개정은 21세기 한국사회가 제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넘어 선진국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도 필수적 과제이다.

 

   최근 SNS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연방제에 버금가는 자치분권공화국’이라는 용어를 이용하여 북한의 ‘고려연방제’에 빗대 이념공격을 전개하는 모습을 보면 걱정스럽다. 60년전 국민소득 87달러시절의 낡은 이념논쟁에 머물러있는 듯한 이들의 의식과 행동을 보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접어든 세계 10대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국민의식수준이 폄훼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촛불혁명은 저열하고 부패한 특권의식과 낡은 이념의 굴레를 벗어나 모든 국민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람답게 살아가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모든 국민의 명령이다. 제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진전되는 21세기에 한국사회도 선진사회를 향한 바람직한 사회규범을 담고 있는 헌법다운 헌법을 시급히 마련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 국민의 관심과 역량을 모아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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