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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학연구센터 소식

[수원학세미나] 제3회 수원학 세미나 - 수원, 그리고 경기도의 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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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8-08-20 20:58|조회수 : 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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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수원학 세미나 개최

 

○ 주   제 : 수원, 그리고 경기도의 촌락

○ 일   시 : 2018. 8. 20(월) 16:00 ~ 17:30

○ 장   소 : 수원시정연구원 제1강의실

○ 발표자 : 정치영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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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내용

  촌락은 한 가족의 거주공간인 가옥이 모여 이루어지며,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전통적인 생활공동체, '마을'이라고 하는데 급격한 도시화, 산업화를 경험한 우리나라의 경우 촌락과 도시의 구분이 모호한 지역이 많으며, 수원이 그 대표적 지역이다. 현재 수원의 촌락은 도시화의 영향으로 급격하게 변화, 고유성이 희박해졌다. 수원뿐 아니라 경기도의 촌락을 촌락지리학의 전통적인 접근방법인 입지, 형태, 구조, 경관 등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촌락의 입지는 마을 형성 시기에 한번 정해지면 크게 변화되지 않으나, 촌락의 형태, 기능, 구조 등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주어 촌락 입지를 통해 촌락 조성 당시 주민들의 자연관, 복거관(卜居觀) 등 환경인식 체계 파악이 가능하다.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는 조선시대 촌락 입지의 기준을 제시했는데, 지리, 생리(生利), 인심, 산수 이 중 지리를 가장 중시했다.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 자연조건은 지형, 기후, 토양, 식생 등이며, 인문조건은 경제, 교통, 정치, 사회조건과 문화적 전통이 해당한다.

  촌락의 입지는 골짜기 입지, 강변 입지, 해변 입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골짜기 입지는 계류변의 비옥한 충적지를 끼고 있어 농경에 유리하고, 주변 구릉지와 산지에서 다양한 자원 획득이 가능하다. 또한 풍수설의 명당(明堂), 청학동(靑鶴洞), 십승지지(十勝之地) 등 전통적인 이상향에도 부합하는 입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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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변입지는 하천 범람의 위험이 상존하여 범람원 가운에 상대적으로 높은 자연제방을 제외하고는 촌락 입지가 곤란하다. 경기도의 자연제방 상 촌락은 한강 변의 구리시 토평리, 하남시 미사리, 고양시 장항리, 김포시 벌말 등이 대표적이다. 일산평야, 김포평야, 평택평야 등 자연제방 뒤쪽 배후습지는 인공제방, 수리시설 건설 후 본격적으로 촌락 입지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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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촌락의 입지유형은 우선 광교산, 칠보산 등 산지에서 뻗어 나온 구릉 사이에 골짜기가 발달하여 여기에 입지한 골짜기 입지이다. 호매실동의 자목(칠보산), 상광교동의 윗말/작은말, 하광교동의 불당골/문암골, 파장동의 미륵동/일림동, 이의동의 쇠죽골/두릉(광교산), 영통동의 황곡(청명산)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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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번째로 산록완사면 입지가 있다. 산지와 평지가 만나는 부분에 입지한 것으로 산기륵, 구릉지 끝부분에 해당한다. 칠보산 기슭의 금곡동 상촌/중촌, 호매실동 노림/두암, 여기산 기슭의 구운동 하구운, 광교산 기슭의 송죽동 솔대, 조운동 돌미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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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의 곡저평야 입지는 앞의 두 유형에 비해 숫자가 적으며상대적으로 역사가 짧다. 하천 주변의 넓고 평탄한 평지에 마을이 입지하는데, 토양이 비옥하고 평탄하여 농사에 유리하나, 홍수와 가뭄의 위험, 음료수 구득의 어려움이 있다. 수원을 관통해 흐르는 황구지천, 서호천, 수원천, 원천천이 만든 충적지에 입지해 있다. 입북동 벌말, 서둔동 벌터, 세류동 버드내/새터말, 세평동 평촌, 평리동 벌말, 곡선동 벌터 등이 해당한다. 현재는 대규모 주택단지와 산업용지로 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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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락의 형태는 가옥의 밀집도에 따라 집촌과 산촌으로 구분, 집촌은 다시 기하학적 형태에 따라 괴촌(塊村), 열촌(列村), 가촌(街村), 환촌(環村) 등으로 분류된다. 수원의 자연마을은 거의 전부가 집촌이며, 집촌 가운데 괴촌이 지배적이다. 괴촌은 무계획적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거나, 벼농사 중심이 농업양식에서의 수리 시설, 영농의 협업 필요성 등에 따라 형성되었다고 본다. 또한 골짜기나 산록완사면 입지라는 지형적 요인도 있다.

  열촌은 산기슭, 자연제방, 해안선 등 자연지물과 도로, 수로 등 인공구조물을 따라 줄을 지어 집들이 들어서 있는 촌락이다. 과거에는 수원에도 열촌이 존재하였으나 괴촌으로 발달하였다.

  가촌은 열촌 가운데 도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촌락으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도로 양쪽에 집들이 2열 횡대로 늘어서 있는 형태이다. 조선시대까지는 가촌의 발달이 부진했으며, 18세기 이후 상업 발달에 따라 나타난 주막촌이 가촌의 형태 중 하나이다. 영화동 새술막거리, 입북동 주막거리, 매탄동 주막거리 등이 수원의 주막촌이며, 원천동, 하류천리 대황교 등이 가촌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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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락의 구조는 구읍취락(舊邑聚落)과 교통촌락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읍취락은 조선시대 부, , , 현 등 지방행정기관의 소재지이며, 구읍취락은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읍취락에 소재하고 있던 행정기관이 폐쇄, 이전되어 읍의 행정적 기능을 상실한 촌락을 의미한다. 수원의 경우, 화성건설 이전 수원도호부가 있던 현재의 화성시 안녕동 일대가 구읍취락이다. 수원의 구읍취락은 1789년 구읍이 되었기 때문에 그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그 구조나 규모를 확인할 수 있는 문헌자료도 드문 편이다. 주산인 화산 기슭에 객사와 동헌인 은약헌이 위치해 있었고, 읍성으로 고려시대부터 토성이 있었으나, 16세기에 이미 황폐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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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촌락으로 원촌은 대로변, 성문 밖, 나루터, 고개 아래 등에 들어섰고 17세기 이후 쇠퇴하였다. 여행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1-5동의 원집과 약간의 일반 가옥으로 구성되었는데, 조선후기 상업 및 교통 발달로 원촌을 대신하여 주막촌이 발달하게 되었다. 조선전기 수원도호부에는 도산원, 사원, 대제원 등이 존재하였다

 역촌은 주로 도로 변을 따라 30리 간격으로 배치되었다. 역 관아건물과 말을 사육하는 공간을 중심으로 역리, 역노비가 거주하는 가족들로 구성되었으며, 수원도소부에는 장족역, 동화역, 청호역, 화성 건설 후에 영화역을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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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의 전통적인 공간구조는 가옥, 도로, 경지로 구조화 되었고, 생활공간, 생산공간, 상징공간 등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이는 1960년대 이후 산업화, 도시화의 영향과 새마을 운동으로 큰 변화를 겪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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