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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학연구센터 소식

[수원학세미나] 제2회 수원학 세미나 - 수원시 도로망의 변화와 도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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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8-05-16 14:22|조회수 :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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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수원학 세미나

 

수원 지역에 대한 직원들의 이해 증진과 연구역량 강화의 일환으로 수원학 세미나가 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이번 주제는 수원시 도로망의 변화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 주   제 : 수원시 도로망의 변화와 도시공간

○ 장   소 : 수원지속가능발전협의회 대강의실(더함파크 1층, 115호)

○ 일   시 : 2018. 5. 15(화) 16:00 ~ 17:30

○ 강   사 : 손승호 연구교수(인천대 일본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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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내용


수원은 광교산, 칠보산, 청명산을 배경으로 하는 침식분지에 자리고하고 있다. 침식분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살기 좋아하는 지형이기도 하다. 팔달산, 여기산 등의 잔구성 산지가 많고, 해발 60m 내외의 구릉지 사이체 충적지가 발달하였다. 또한 황구지천, 수원천, 서호천 등의 하천이 발달한 곳이다. 이런 지역은 높은 인구부양력을 지는 곳으로 수원은 정조 때 수원 화성이 건설된 이후 전근대도시로 발달하였고, 근대에 들어서 경부선 철도 개통 이후 근대도시로 성장하였다.

 

조선전기 수원은 중심도로가 아니라 간선도로에 해당하였다. 5로인 제주로(濟州路)가 통과되었다. 과천-수원-진위-평택을 지나가는 간선도로이다. 그래서 조선후기 정조가 화성을 건설하면서 영화도(迎華道)로 변경하기전까지 수원을 지나가는 도로는 양재도(良才道)에서 관할했다

 

<그림 1 > 조선시대 간선교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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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0~1770년대의 수원은 <그림 2>가 잘 보여준다. 가운데 붉은 색 동그라미는 현재 융건릉이 위치한 곳으로 수원부 읍치가 있었던 곳이다. 붉은 색 선은 지금의 지지대고개를 넘어서면서 2개의 도로로 나뉘어져 현재와 사뭇 다른 도로망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림 3>에서는 1796년 영화도가 설치되어 수원이 삼남지방으로 이어지는 모든 길의 요충지로 부상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역은 모든 역 가운데 우두머리 역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림 2 > 조선지도                                                <그림 3> 동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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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대에 들어서면 남문과 북문에 장시가 발달한다. 북문 장시는 쇠퇴하고 남문 장시가 크게 발달하게 된다. 교통과 상품유통의 중심지가 되는 것이다. 남문 주변으로 시가지가 확대되면서 지동시장, 영동시장, 팔달문시장, 미나리광시장 등 많은 시장이 남문 주변에 번성하게 되었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매산동에 수원역이 설치된다. 수원과 문밖마을을 연결하는 매산로가 닦여지고 주변도로와 주변에 시가지가 발달한다. 수원역 주변과 매산로를 중심으로 국무농장, 동산농장, 석유창고, 동양척식회사출장소, 소학교 등이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193012월 수원-여주 사이에 수려선이 부설되고, 19373월 수원-인천 사이에 수인선이 부설되어 여주지방의 미곡과 서해안 즉 주안, 남동, 군자 지역의 소금 수송이 이루어지게 된다. 수려선은 수원역에서 화성역, 원천역을 경유하는데, <그림 4>에서 볼 수 있듯이 국도 42호선의 노선과 대체로 일치한다.

     

<그림 4> 수원을 관통하는 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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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수원시 최초로 수원시가지 계획이 수립되었다. 수원역과 화성 남무 사이의 도시화가 진전되고, 매산로 남쪽 지역 세류동에 시가지가 발달했다. <그림 5>에서 붉은 색으로 된 부분은 시가지 발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950년대는 용인방향의 지동과 인계동 일대에 시가지가 발달하고 수원천 동쪽으로 시가지가 확장하는 선형의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그림 5> 수원역에서 남문주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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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에는 <그림 6>을 보면 국도 1번과 42번 주변인 세류동과 지동에서 시가지가 뻗어가고, 장안문 북쪽 영화동의 도로와 도시화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팔달산 서남쪽과 경부선 사이 고등동에 시가지가 확장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림 6> 1970년대 초 수원의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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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들어와 영화동, 매교동, 연무동 일대의 도시개발과 직교형 도로망이 구축되면서 기성시가지(Inner City)의 미로형 도로망이 발달하게 되었다. 아울러 간선도로도 확충되는데, 서부로, 팔달로, 경수대로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림 7> 1980년대 수원의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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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수원은 경수대로 동쪽 인계동의 시가지가 개발되었고, 정자동, 천천동 일대도 개발하게 되었다. 대체로 1990년대는 시가지의 수평적 팽창과 간선도로가 확충되었다. 1990년대는 신시가지 개발과 함께 도로 증가가 두드러진 시기이다. 2000년대에는 영통신도시 개발과 직교형 도로망이 형성되었다. 동수원의 도시화가 진행되고 고속화도로가 통과하였고, 시가지 우회도로도 이때 개설되었다. 2017년 현재 수원의 도로망은 간선도로가 도시를 남북방향과 동서방향으로 통과하고 있고, 수원역과 수원화성을 중심으로 방사상 형태의 도로망이 구축된 상태이며, 기성시가지는 좁은 도로, 신시가지는 직교형 도로로 형성되어 있다.

 

<그림 8> 수원을 통과하는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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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수원의 간선도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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